김준호 레오 선생이 강냉이 가루 몇 되, 담요 석 장을 지닌 채 무등산에 오른 그 때가 1956년 3월, 가족들에게 전염될까 두려워 집에 돌아가지 못한 폐결핵 환자에게 움막을 쳐주겠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결심한 입산이었다.
선생은 동행한 걸인 소년 두 명과 폭포수 부근의 숲속, 나무와 나무 사이에 담요 한 장을 치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날이 바로 오늘날 소화자매원의 시작이다.
"움막을 쳐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주인공" 인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중병원(현,기독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을 때 건네준 성녀 소화(小花)데레사의 시는 선생이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게 된다.
그는 갔어도 거할 곳 하나 없이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생수가 나는 곳마다 선생은 움막을 치기 시작했으며,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무등산 골짜기에는 80여명이 살 수 있는 큰 건물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1964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으로 이전, 정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