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08월 20일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다.
1946년 "한국의 프란체스코"로 불리는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성프란치스코의 "완덕의 거울"에서 깊은 감화를 받고, 가난도, 병도 성스럽다는 것을 깨닫다.
1956년 광주천 양림 다리 밑에서 걸인형제들과 생활하던 중 골결핵으로 제중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결핵환우 전건식이라는 청년을 통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시를 접하다.
1956년 08월 두 명의 전쟁고아를 데리고 무등산 제2수원지 위 숲속에 움막을 치다.
1967년 04월 종교철학자인 다석 류영모 선생의 후원으로 전북 완주군 구이면 용복리 독배마을에 전주분원 진달네집을 설치하다.
1976년 05월 06일 경기도 벽제에 있는 계명산에서 오웅진 신부에게 세례(레오)를 받다.
1978년 조비오 신부를 만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이사회가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법인설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1985년 03월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을 설립하다.
1999년 01월 18일 "예수의소화수녀회"가 창설되다.
2010년 10월 27일 87세 선종
성 프란치스코는 1182년 이태리의 아씨시에서 탄생한 가톨릭 성인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성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분방하고 야심많은 청년기를 보내던 중 일련의 계시와 나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기도와 보속의 회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고 할 만큼 철저히 복음적 삶에 투신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가난과 겸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인은 철저히 겸손의 길을 걸었으며, 1224년 라베르나산에서 깊은 관상과 기도 끝에 오상(五像)까지 받으신 성인의 신심을 많은 이들을 복음적 생활에로 이끌어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과 형제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지상에서 사셨던 것처럼 산다는 것과 ”순종하며 소유 없이 정결하게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2회칙1,1)을 제시하였습니다.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난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1873~1897)는 우리에게 소화데레사로 더 친숙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15살 어린 나이에 프랑스 지리외의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여, 9년이라는 짧은 수도생활을 하다가 24살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교회에 커다란 사랑의 흔적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녀의 영성은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나온 것으로 많은 믿는 이들에게 진리의 단순함을 맛보게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성소가 ‘사랑’임을 발견한 데레사 성녀는 작은 희생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회개의 길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비단은 가장 가는 실로써 짜지는 것처럼, 성녀께서는 지극히 평범함 일과 기회를,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써 알뜰히 실행하시고 이용하심으로써 최대의 가치를 내었습니다.
이러므로 성녀의 길은 누구든지 따를 수 있고, 또 따라야만 할 지극히 평탄하고 안전한 길이며, 그녀가 선한 삶을 택하며 보여준 작은 사랑의 길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빛을 주고 있습니다.